1. 들어가며
우리 형법 제51조와 제53조는 형을 선고함에 있어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형을 감경할 수 있고, 피고인의 성행, 범행의 동기와 결과, 범행 후의 정황과 더불어 피해자와의 관계를 양형에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처벌불원,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양형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고, 실무에서는 감형을 받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의 증거로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한 탄원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이하 피고인이라고만 한다)의 엄중처벌을 원하거나 합의금을 이유로 형사합의가 결렬될 경우, 피고인은 피해자를 피공탁자로 합의금을 공탁하고, 재판부에 공탁서 사본을 피해회복 노력의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공탁법이 공탁서에 피공탁자의 주민등록번호 기재를 요구하여, 공탁과정에서 피해자와 피고인 간 개인정보유출을 원인으로 하는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2. 개인정보 수집관리의 위반
가. 문제점
피고인은 공탁을 위하여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을 경우, 수사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 등에서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하는데, 수사기관을 통한 주민등록번호 유출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위험이 있다.
나. 개인정보의 수집에 관하여
(1) 개인정보보호법은 제15조와 제16조에 동의를 받은 경우,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등에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있고, 수집하는 경우에도 그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에 관하여는 동법 제24조에 다른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하여 별도로 동의를 받은 경우와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고유식별정보의 처리를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경우에 수집할 수 있도록 별도로 규정하고 있어,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 수집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2) 형사사건의 피해자에 관한 정보는 범죄의 구성요건으로서 범죄의 성립여부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특정이 필요할 뿐이므로,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피해자 개인정보의 수집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과 인권보호수사준칙은 피해자 등의 신변보호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정보 수집이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거나 소관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3) 또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 관련 법령도 수사기관에 피해자 개인정보 수집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조의2가 범죄수사를 위하여 민감정보와 고유식별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 규칙이 피의자 이외의 자에 대한 조서작성에 관하여는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고, (경찰청)범죄수사규칙 제68조가 피의자의 성명, 연령,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피의자가 아닌 자에 대하여는 피해상환, 처벌희망여부 등에 관한 사항을 조서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위 규칙의 규정은 피고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좁게 해석하여야 하므로, 피해자 개인정보 수집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검찰사건사무규칙과 (경찰청)범죄수사규칙은 별지 진술조서 양식에 피의자가 아닌 자에 대한 진술조서 작성 시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위 규칙들 본문이 규정한 수집가능 개인정보를 초과하는 것으로서, 정보수집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 어긋나 피해자 개인정보 수집의 근거는 될 수 없다.
(4) 가사, 피해자 등이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는 진술조서 작성에 필수적인 정보가 아니고, 개인정보보호법이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처리를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경우에만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수사기관이 법령의 근거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다. 개인정보의 관리에 관하여
(1) 개인정보보호법 제3조 제4항, 제29조, 동법시행령 제30조 제1항 제2호는 "정보주체의 권리가 침해받을 가능성과 그 위험 정도를 고려하여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여야 하고, 개인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 통제 및 접근 권한의 제한 조치 등 기술적·관리적 물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어, 수사기관에게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가해자 등 제3자에게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2) 실무는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이 수사기록을 열람할 때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가리지 않아 열람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보고, 암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수사기록 열람 시 피해자의 개인정보 메모를 허용하는 수사기관도 있다. 물론, 수사기록을 복사할 시에는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개인정보를 제거하고 교부하나, 열람 시 이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수사기관이 개인정보 유출을 방관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3. 공탁법에 관하여
가. 형사공탁의 문제점
(1) 형사합의가 거절된 경우 피고인은 합의와 피해보상 노력의 소명으로 공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어, 형사공탁이 형사소송에서 중요한 양형결정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형사공탁은 법률상 민사공탁제도와 별도로 규정되지 않아 문제가 된다. 즉, 공탁법은 민사공탁과 형사공탁의 요건이나 절차를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고, 공탁규칙 제20조 제2항 제5호는 공탁서에 피공탁자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는 방법으로 피공탁자를 특정할 것을 요구하나, 피해자와 합의가 결렬된 이후 개인정보를 공식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 이 경우 형사공탁은 주로 수사기록 열람과정에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피고인에게 전달될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와 접촉해야 하는 부작용과 피해자가 피고인의 보복 등 2차 범죄에 노출될 위험 등 피해자가 범죄 후 범죄피해와는 별도의 정신적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 형사공탁제도의 개선방향
(1) 형사공탁은 형사합의가 결렬된 이후의 절차이기 때문에 피공탁자의 개인정보를 공탁서에 기재할 것을 요구하는 공탁법 규정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피고인이 양형에 참작을 받기 위해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불법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제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형사공탁과 민사공탁 절차를 분리하여 형사공탁은 피공탁자의 개인정보 없이 공탁이 가능하도록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즉, 민사공탁과는 별도로 형사공탁을 정의하고, 형사공탁서에 개인정보 없이 피공탁자 특정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재판부 또는 수사기관이 피공탁자를 특정 하는 방향으로 공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2) 이와 관련, 대법원이 제공하는 공탁서 양식은 형사사건번호와 사건명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 바, 형사사건번호와 피공탁자의 성명을 조합하여, 피공탁자를 특정할 수 있어 굳이 공탁서에 피공탁자 특정을 위한 개인정보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 최근 검찰이 공소장에 피해자의 가명을 기재하는 내용의 '가명조서 작성관리 지침'을 제정하려고 하는 바, 공탁서에 피공탁자의 가명을 기재하여 공탁을 하더라도 공탁물 수령과정에서 법원 또는 검찰로부터 피공탁자라는 확인을 받으면 공탁물 수령이 가능하다.
(3) 공탁서에 피공탁자의 개인정보 기재가 필수적이라면, 피고인이 공탁서에 형사사건번호를 기재하여 이를 재판부 또는 수사기관에 제출하고 해당기관이 피공탁자를 특정한 후 공탁소에 공탁을 촉탁하는 프로세스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공탁서 자체로 피공탁자가 특정되어 피공탁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등의 절차 없이 공탁금을 수령할 수 있고, 피고인이 피공탁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여야 하는 동기가 제거되는 장점이 있다.
4. 결어
최근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피공탁자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개인정보에 관하여 피해자의 동의를 받았냐는 공탁관의 질문에 당황한 경험도 있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후 2년여 동안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에 관한 인식이 금융기관 및 정보통신서비스 업체를 벗어나 사회 저변에 정착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법원의 개인정보보호정책은 일반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관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사 단계에서부터 개인정보 수집의 최소화와 체계적 관리로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2차 범죄의 위험을 제거하는 등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또한, 형사공탁제도는 피해자와 합의가 주요 양형인자인 우리 법제도 하에서 피고인의 주요 방어수단이므로,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여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형사소송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사공탁 관련 공탁법의 개정 (0) | 2020.11.25 |
---|---|
5. N번방 사건 아청법에 의한 처벌 (0) | 2020.04.04 |
4.간통죄에서의 전문증거 (0) | 2018.12.28 |
2.검찰주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검찰조서)의 증거능력 (0) | 2018.12.28 |
1.위법한 긴급체포에 따른 압수증거의 증거능력 (0) | 2018.12.28 |